후난 흑차의 효능과 특성(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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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공부차 번역 작성일15-12-28 13:55 조회6,668회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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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난 흑차의 효능과 특성(평다(评茶) 논문)
발행일자: 2012-07-18
후난 흑차의 효능과
특성을 가볍게 논하다
딩추시엔(丁出贤) 국가 고급 평다사
개요:
후난(湖南) 흑차(黑茶)는 한때 변소차
(边销茶, 볜샤오차)라고 불렸다. 변방지역에
전문 판매하는 찻잎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후난 흑차가 정말 변방의 소수민족이 마시는 데만 적합할까? 후난 흑차가 정말 비만이거나 육식을 선호하는 민족, 혹은 유럽인이나
미국인만 마셔야 하는 차일까? 이 글을 보고 나면 후난 흑차의 역사와 관련 전문가들이 전문과학연구실험을
거쳐 증명한 후난 흑자의 특별한 효능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불어 산모와 월경 기간인 여성을 제외한
다양한 연령대와 체질의 남성과 여성이 모두 후난 흑차를 마실 수 있고 건강에도 매우 도움이 됨을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키워드:
후난흑차효능, 제조공예, 관돌산낭균, 2300년의 흑차역사,
금화, 변소차,
후난흑차삼전(三砖)(복전, 흑전, 화전), 삼첨(三尖)(천첨, 공첨, 생첨), 화권(花卷)(백량차, 천량차, 십량차)
복전(茯磚)과 흑차에서의 보이차는 모두 고급 흑차에 속한다. 후난 복전은 명조 가정년(서기 1559년)부터 차마(茶馬)거래의 메인 차가 되어 현재까지 500년
가까이 메인 차로서의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 중 화전(花磚)은 벽돌 모양의 전차 테두리에 무늬가 새겨지고, 흑전(黑磚)은 화전과 마찬가지로 긴압방식으로 만들어지지만 꽃이 피지 않는다는 차이점이 있다. 복전은 삼복시기(伏天)에 가공하기 때문에 복전차(伏砖茶)라고도 부르며 약효가 토복령(土茯苓)과
같아 복차(茯茶) 또는 복차(福茶)라고도
부른다(동일한 ‘복’자
이지만 한자가 모두 다르다). 1939년에 건설된 백사계차창이 1950년대
초에 복전차를 압축 제조하면서 성공을 거두었다.
삼첨(三尖)은 상첨(湘尖)이라고도 부르며
예로부터 첨첨(天尖), 공첨(貢尖), 생첨(生尖)의 통칭이었다. 삼첨은 후난 고급 흑차로 곡우시기에 채집해 생잎을
악퇴(渥堆) 가공을 해서 만들어진다. 청 도광 시기(1825년 전후)에
천첨과 공첨은 공물로 사용되어 황실에서 음용되었다. 삼첨차는 대 광주리에 담아 포장하는데 이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찻잎 포장 방법이다.
백량차(百两茶)가 먼저 나온 후 천량차(千两茶), 십량차(十两茶) 등 규격이 다른 상품이 나왔는데 그 가공방식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모두
볶고 적시고 찌고 밟는 등의 방식을 거치는데 이는 제한된 부피에 더 많은 찻잎을 담을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흑차 품질을 높이는 데도 필수적이다. 화권은 백량차, 천량차 종류의 통칭이다. 그 주요 특징은 대오리로 묶어서 바둑판 모양으로 만들어진 대 광주리에 포장하고 흑차 원료는 줄기가 없이 찻잎으로만
이루어지며 긴압하면서 생기는 무늬가 찍히게 되는 것으로 이러한 특징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원기둥 모양으로
생긴 것이 마치 돌돌 말아놓은 책과 같다고 해서 ‘화권’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一. 후난 흑차의 역사
흑차는 중국 6대 차
중 하나이자 중국 특유의 차 종류다. 후난성은 중국 흑차의 60%를
생산해내는 중국 최고의 흑차 생산도시라고 할 수 있다.
당(唐)대 양예(杨烨)는 『선부경수류(膳夫经手类)』에 ‘탄저우 차에는
단차(团茶) 거강박편(渠江薄片) 차가 있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거강박편 차가 샹양(镶阳)을 거쳐 장안(长安)으로 유통되었다고도 기록하고 있다. 이로 볼 때 안화(安化)의
거강박편 차는 멍딩산(蒙顶山) 차와 마찬가지로 당대 조정에서 마시기 시작했을 것이다. 따라서 어떤 지역의 공차(貢茶)도 이양(益阳) 안화의 공차만큼 역사가 오래되고 품종이 다양한 것은 없다. 당대(서기 856년) 사료에서도
이미 당시 생산된 거강박편 차가 가장 유명해 일찍이 조정의 공물이 되었고 심지어 ‘차 도시(唯茶甲诸州(县))’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적혀있다.
오대 때(907〜960년. 당(唐)대 말기에서 송(宋)대 초기에 이르는 기간) 마오원시(毛文锡)는 『차보(茶譜)』에서 거성박편이 1kg에 80매(枚)라고 기술하고
있으며 ‘담소(谭邵) 사이에 거강(渠江)이 흐르며 차가 있지만
독사와 맹수가 많다. 차의 색은 마치 철과 같으며 그 향은 독특하다’고도
기록하였다. 이는 당대 후난 안화가 이미 거성박편을 생산하고 있었으며 현지에서 어느 정도 이름이 나
있었고 차의 색과 광택은 흑갈색이었음을 증명한다. 이는 곧 전형적인 상급 흑차의 색과 광택이다. 다시 말해 당시에 이미 흑차가 생산되고 있던 것이다. 2009년
안화는 세계기록협회에서 중국 최초 흑차 생산지로 선정되었다.
후난 이양 흑차는 세계 군사 역사에도 기록되는데 바로 세계적으로
전무후무한 다상군(茶商軍, 안화차의 중의약과 수요 초과현상으로 생겨난 특수군대)가 조직된 것이다. 찻잎 전쟁은 아편전쟁보다 1000년 일찍 일어났다. 북송에서는 전쟁이 빈번해 군마가 부족했는데 서북지역에서 말은 은화로는 살 수 없었고 유일하게 찻잎으로만 구매할
수 있었다. 조정에서는 바로 전문 군대를 안화로 보내 차를 수확하고 압송해 군마 구매에 사용했다. 이러한 차마(茶馬)정책을 실시한 군대를 바로 ‘다상군’이라 부른다. 명대
문학가 탕시엔주(湯顯祖, 탕현조)는 『차마(茶馬)』 시에서 이렇게 감탄했다. “흑차가 얼마나 아름다운가! 강족의 말 또한 얼마나 특별한가!”
남송에서는
찻잎 독점 판매를 폐지하였지만 세금이 너무나도 과했기 때문에 차상(茶商)들이 아무런 이득을 볼 수 없었다. 그래서 이들은 연합하여 다상군을
조직해 무장하여 차를 판매하고 세금 징수에 대항했다. 1180년 후 리후장(黎虎将)과 라이원쩡(赖文政) 등 찻잎 상인 조직인 다상군 생겨났고 그 구성원은 3,4천명에 달했다. 이 때문에 조정도 군대를 안화 쯔수이강(资水)의 룽탕(龍塘, 용담)에
파견시켜 돌담을 쌓고 찻잎의 수로와 육로를 모두 차단하였으며 무장 상인을 공격했다. 룽탕짜이(龍塘寨, 용담 울타리)에는 현재까지 찻잎 전쟁의 유적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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