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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다방(茶房)이 필요한 시간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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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訊悲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6-05 20:17 조회3,74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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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다방(茶房)이 필요한 시간 … 1)
 
1) 다방추억 되뇌다.
 
'다방'의 어감은 어쩐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가까운듯 하면서도 오래된 기억 저편이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차한잔 나누며 이야기 나누는 곳. '다방(茶房)'.
때로는 끽다점(喫茶店)이니 다실(茶室)이라고도 불린 이 공간은
각각의 기억속에 또 다른 각각의 이미지와 추억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그의 기억속에선,
황금비율의 커피·크림·설탕 그리고 계란 노른자 탁!깨주는 
화려한 마담의 모닝커피 손놀림의 맛으로.

그녀의 기억속에선,
설탕보다 달작한 목소리로 음악을 던져주던 DJ. Mr Joo 오빠의 목소리의 여운으로.

혹자에게는
변두리 터미널을 기점으로 하는 퇴폐적인 색(性)문화의 이미지로 남아 있을 런지도 모른다.

또 어린 친구들에게 있어 다방이란,
노인양반들이 찾는 소소한 분위기의 쌍화차 집으로 상상될 수 있으리라.
 
사실 '다방'이라고 하는 것은 의식주라는 인간살이의 원초적인 영역을 벗어난,
가도되고 안가도 되는 다분히 취향적인 공간임에 분명하지만.
우리가 그곳을 알고 있던 오래, 그보다 더 오래전부터
이미 우리는 차마시고 이야기 나누는 공간에 무한 애정을 쏟아왔다.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신라시대 한송정(寒松亭)에서 화랑들이 그러했고,
고려, 조선시대를 넘나들며 그 당시 검찰공직자들이 그러했다.
비록 시대는 다르지만 '다방'이라는 차&공간에서
뭔가 독특한 그들만의 의식이 행해지고 전해지다 사라지듯 그렇게 명맥을 잇게 된다.

일단 요 시대를 넘나드는 오래된 다방이야기는 뒤로하고,
지금 우리들 기억속에 남아있는 멀지 않았던 다방에 대한 추억을 똑똑거려보자.
 
 
2) 근대다방의 모습들.
 
다방!에 대한 당신의 기억 혹은 추억은 어떠한가?
1920년대 후반, 종로와 명동을 중심으로 서구에서 들어온 신식문물인 커피가 유행하게 된다.
바야흐로 세련된 근대문화적 공간이 등장했으니, 문화예술인들과 지식인들의 아지트가 생겨난 셈이다.
한국인이 개업한 첫번째 다방은
1927년 「춘희」「장한몽」등의 영화를 제작한 최초의 영화감독 이경손이 관훈동에 문을 연 
‘카카듀’.
경쾌하고 예쁜 어감인 카카듀라는 이름은 불란서 혁명 때 경찰의 눈을 피해 모이는 비밀 아지트인 술집 이름에서 따왔다고 하니 그저 마냥 곱기 만한 이름만은 아니다. 
이후 천재 시인 이상(李箱)도 1933년 청진동 입구에 ‘제비’라는 다방을 개업했고 영화연극인· 화가· 시인· 소설가· 음악가 등 다양한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다방문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펼쳐지게 된다.

캬캬듀.jpg
  한국커피사, 영화사의 선구적 인물, 이경손
(오~ 심상치 않구나 헤어스타일)

사본 -다방.jpg
  명동 인근에 다방을 개업, 운영했던 대표적 문화예술인
[참고: 오선희, 한국다방 실내디자인의 시대구분과 공간특성에 관한 연구.2014]

1950년대는 문예 살롱의 장소이며 연락을 나누는 거점이었는데, 
한가람·아세아·경성·신사·제일·단성사 등이 그 당시 유명한 다방들이었다. 
그 중 지금도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학림다방은 음악다방으로 유명하여 
과거부터 현재를 아우르며 꿋꿋이 시간을 지켜내고 있다. 
이곳은 옛 다방의 정취가 그리울 때면 마실가기 좋은 곳이기도 하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4가 94-2) 1956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앞에 처음 문을 열어 문리대 '제25강의실'이라는 별칭으로 부르기도 했으며, 그 당시 많은 시인, 문학가, 음악가들이 들락거리는 유명한 장소였다.

학림다방.jpg
                                        학림다방             

1960년대 이후 다방의 분위기는 크게 변하게 되는데, 
지식인계층의 남자주인에서 
얼굴마담인 여자주인과 레지·카운터·주방장 체제로 변모하게 된다.
당시 TV 드라마에서도 다방은 빈번한 약속장소였고, 
감초마냥 훈남인 주인공에게 과한 요염함을 마구 흘리는 다방 마담은
괜시리 순진한 안방마님들의 염장을 심하게 지르곤 하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다방은 대중적, 전국적으로 그 규모가 확장된다.
하지만 인스턴트커피가 출현하기 시작되면서, 70년대 들어서는 일반다방과 젊은이들이 결집되는 DJ 음악다방이 생겨나면서 양분화 되는 모습을 보인다.
즉, 젊은이들의 음악다방과 커피숍, 까페로 그들만의 공간을 만들어갔고, 
다방의 이미지는 모임과 대화의 장소라기보다는 점점 성(性)의 이미지가 결부되어갔다.

나의 기억속 아스라하게 남은 마지막 다방의 기억은 
오토바이 뒤에 매달려 위험스럽게 커피쟁반을 나르던 레지의 뒤태이다. 
그녀들은 보자기에 커피도구들을 소중히 담아서 언제 어디라도 주문만 받으면 
다 찾아갈 수 있다는 그런 기세였다. 
종종 중소도시와 시골마을의 '티켓다방'에 대한 뒤숭숭한 소문 같은 이야기들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남의 세상살이라 치부하였고 그렇게 시간을 흘렀다.

2014년의 오늘.
거리에는 수많은 고급전문커피점이 즐비하다. 
원두가 풍기는 그윽한 커피향에 많은 이들이 열광한다. 
바리스타를 꿈꾸고, 작고 세련된 커피전문점을 운영해 보고자 하는 젊은이들도 많다. 
이제 다방은 낯선 추억의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다방 자체도 대부분 지하로 숨어들었거나 뒷골목 변두리에서 그 맥이 근근이 이어가고 있을 뿐…
그것은 마치 산전수전을 심하게 격고 난 후의 퇴락한 늙은 노파의 쓸쓸한 뒷모습 같다.
안쓰러운듯 그러나 가까이 갈수도 없는…

한때는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던 장소로서의 다방이었고, 
선남선녀가 수줍게 사랑을 고백하던 장소였다. 
가벼운 마실거리를 나누며 일상을 벗어나 그대가 혹은 타인이 소통하는 곳, 다방은 
참 따뜻한 만남의 장소였다.
이제 우리는 이곳 '인문다방'에서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한걸음 쉬었다 가는 쉼터로서의 공간을 꾸려가려한다. 
바로 그때 그 시절의 다방문화을 새롭게 만들어가는 것이다.
촌스러움이 더 이상 촌스럽지 않고 다정한 맛을 낼 때. 그리고 그 맛을 이해할 때 
비로소 우리는 삶의 작은 행복을 느끼게 될 것이다.


 
* 후기: 다음 시간에는 '다방(茶房)이 필요한 시간… 2편' 
역사속 다방(茶房)들과 그 시절 다방문화를 탐방합니다. 
근대 다방이 커피문화 중심이었다면, 과거 다방에서는 차(茶) 이야기를 하려구요.

글. 신비 김세리 sinbi-1010@nate.com
[이 게시물은 공부차님에 의해 2017-06-05 14:56:00 인문다방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