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다방(茶房)이 필요한 시간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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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訊悲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4-06-13 19:02 조회3,191회본문
<2화> 다방(茶房)이 필요한 시간… 2)
3) 공무원들 차(茶)마시는 시간, 다시(茶時)
[전한서, 팔조법금]
오랜만에 기억을 더듬더듬 역사 문제를 풀어보자.
다음 내용은 어느 때의 형률인가? 1) 살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한다(相殺, 以當時償殺). 2) 남의 신체를 상해한 자는 곡물로써 보상한다(相傷, 以穀償). 3) 남의 물건을 도둑질한 자는 소유주의 집에 잡혀 들어가 노예가 됨이 원칙이나, 자속(自贖:배법)하려는 자는 50만 전을 내놓아야 한다. (相盜, 男沒入爲其家奴, 女子爲婢, 欲自贖者人五十萬). ①고조선 ②고구려 ③고 려 ④고구마 |
문제가 너무 쉬울까? 그래도 어쩌다 고구마를 찍는 배고픈 자가 있을지도 몰라.
잘 알다시피 고조선에서 시행했다던 8조법 중 3조의 내용이다.
살인자는 즉시!(여지없이) 사형에 처한다는 항목만으로도 그 당시 법집행이 호락호락 하지만은 않았지 싶다.
국가가 만들어지면 통치가 생겨나고 규제를 위한 법이 제정·집행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이 사람의 죄목을 판단하고 처벌한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된 일인가.
죄 있음과 죄 없음의 판단.
어떤 시각과 감정으로 접근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하늘과 땅차이 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처벌을 넘어 처형이 기다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억울한 죄를 뒤집어쓰고 평생 울화를 씹어 삼키며 살다간 사람들도 부지기수.
그러니 이런 서럽고 한스러운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선 집행자의 객관적이고 진지한 사건의 해석은 정말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고려와 조선 시대, 정치를 논의하고 풍속을 바로잡으며 관리들의 잘못을 조사하여 그 책임을 탄핵하는 일을 맡아보던 관아가 있었으니, 바로 사헌부(司憲府)이다.
역시나 이 사헌부에서는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을 매우 중하게 여겨 그들만의 진중한 예의식과 결정의 시간을 마련하고 있었다.
이들은 날마다 한 번씩 모여 차를 마시는 시간, 즉 '다시(茶時)'를 가져 말[言]의 책임을 다하고 공정한 판결을 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사실 조선초에는 서울의 관청이 모두 다시를 행할 정도로 중요시하였으며, 16세기에는 혜민서(惠民署:가난한 백성에게 무료로 병을 치료해주던 관아)에서도 다시를 행하였다. 사헌부는 고종때까지 가장 오랜 기간동안 다시제도를 유지하였다.
다시제도는 고려의 왕이 신하의 사형선고나 귀양 등의 중대한 결정을 하기 전에 신하들과 함께 차를 마시던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중형에 대한 처결을 보고하는 의례)와 비슷한 것으로, 참여자들의 진지한 예의식과 차나눔을 통하여 몸과 정신을 바르고 맑게하여 치우치지 않는 바른 판단을 내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당시 진행하였던 내용을 엿보면 예(禮)와 차(茶)로서 상당히 진지하고 성실하게 운영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다방(茶房)의 참상관(參上官)이 옆문으로 들어와 차를 올리면 7품 내시(內侍)가 뚜껑을 열어준다. 집례는 전(殿) 위로 올라가 전면의 기둥 밖에서 국왕을 향해 절을 하고 차를 권한 후 차를 내려놓고 전에서 내려간다. 그 다음, 8품 이하의 원방(院房)이 재추(宰樞)에게 차를 올리면, 집례는 다시 전 위로 올라가 엎드렸다가 재추들을 향해 차를 들기를 청하고 나간다. 그 다음, 단필을 맡은 관리와 주대를 맡은 관리가 들어와 형량을 아뢰면 단필로 참형의 판결을 삭제하고 감형해 유인도로 유배 보내는 결정을 내린다. < 중형주대의(重刑奏對儀)의 내용 中…> |
사헌부의 정6품 벼슬인 감찰(監察)들은 회의장소에 모여 다시를 행하고 헤어지는데, 때로는 다시를 행할 책임자를 미리 선정하여 승낙받기도하였다. 다시를 진행함에 있어서 주관하는 이를 따로 정해 체계를 갖추어 운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이 당시 감찰들은 자신의 직업에 강한 자존감과 사명의식이 있어 검소함의 당당함을 오히려 자부심으로 여겼다.
백성들은 누추한 옷을 입거나 좋지 않은 말에 부서진 안장 등 검소한 몸차림새로 그가 감찰인 것을 알 수 있었고, 부유한 집 자제도 그 관례를 지켰다고 한다.
요즘 같은 시대에는 감찰이나 졸부나 비슷한 브랜드의 옷을 입고, 차를 몰고 다니니 누가누군지 알 수 없을 테지만, 행색이 초라하여도 말과 행동에서 품어져 나오는 기품과 자신감은 감찰과 평범한 범인을 쉽게 구분지어주는 단서가 되겠지.
한편, 조선 초엽에는 야다시(夜茶時)라고 하여 밤중에 다시를 갖는 경우도 있었다.
신하들 중에 간사하고 외람되며 더럽고 탐하는 자가 있으면 그 집 근처에서 야다시를 열어 그 사람의 죄상을 흰 널빤지에 써서 그 집의 문위에 걸고 가시나무로 문을 단단히 봉한 뒤에 서명을 하고 갔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세상에서 유폐(幽閉)되어 버림받게 되었다.
인생사 기승전결.
이런 감찰 순수의 시대는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한다.
다시는 그 풍습이 조금씩 변모하였고, 감찰의 옷도 화려한 복장으로 바뀌었으며, 야다시의 좋은 풍습이 없어지고 「야다시」란 말이 잠깐 사이에 남을 때려잡는다는 뜻의 속어로 변해버렸으므로 나라의 미풍이 없어졌음을 성호 이익(李瀷)선생 또한 심히 개탄하였다고 한다.
현재 대한민국 최고 법 집행기관은 검찰이다. 물론 전신은 감찰이다.
국민 모두가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깨끗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범죄를 수사하고 법을 집행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군대가 외부로부터의 공격을 막는 역할을 맡고 있다면 검찰은 내부로부터의 공격을 막는 것이 그들의 임무라고 한다.
하지만 요즘 검찰의 모습을 보면 아찔한 순간들에 눈을 감게 만든다.
최대한의 중립을 지켜야 억울한 국민들이 줄어들 수 있다.
중도를 지켜야 권력자들의 횡포를 막을수 있다.
검찰의 핵심은 독자적인 중립을 유지하며, 자신들이 스스로 위풍당당할수 있는 의로움을 지켜내는데 있다.
시대가 달라졌어도 정신적 맥락은 하나라.
마음의 예(禮)를 담고, 차(茶) 한잔을 마시며
투명하고 의로운 법집행이 이루어지길...
예전 그때의 검소당당한 감찰의 시대가 다시 오길 바램.
다시(茶時)여! 다시오라.
글. 김세리 sinbi-1010@nate.com
-참고-
한국고전종합DB
정영선, 한국의 茶文化, 너럭바위, 2003.
이귀례, 한국의 차문화, 열화당, 2002.